오드리 헵번 하면 떠오르는 대표 스타일 중 하나는 바로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턱 밑에 곱게 매듭을 묶은 뒤, 두꺼운 선글라스를 매치하는 것! 요즘 패션 인플루언서들 사이에 이 오드리 햅번의 공식이 유행이다.
그래니시크란 할머니를 뜻하는 '그래니'(Granny)와 '시크'(Chic)가 결합한 패션 용어로 멋쟁이 할머니 패션을 지칭하며, 그래니시크 대표 아이템은 스카프이며, 할머니 옷장에서 꺼낸 듯한 레이스, 러플, 꽃무늬 아이템도 인기를 끌고 있다.
틀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MZ세대의 성향이 패션 트렌드에도 반영이 되면서 나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차림새가 신선하다고 여겨진다.
스카프는 본래 남자, 군인의 물건이었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은 어머니가 마음 꾹꾹 눌러 담아 다리고 바느질한 천에 낯선 도시의 지형을 그려 넣거나 군사기밀을 몰래 적어 목에 감고 다녔다. 물자가 부족한 전장에서 이 네모반듯한 천은 만능 대용품이었고, 어떤 이는 잃어버린 벨트를 대신해 허리춤을 조였고, 누군가는 아픈 상처를 묶었다.
남성 다움의 상징이던 스카프가 여성의 패션 소품으로 쓰임새가 넓어진 건 포연(砲煙)이 유럽 대륙을 메우기 시작한 1930년대부터 몇몇 쿠튀르(고급 의상) 디자이너들이 패션의 도구로 스카프를 주목했다.
에르메스 4대 회장인 로베르 뒤마가 대표적이며, 군인들 지시를 받고 지도나 지령을 찍은 손수건을 제작하던 그는 1937년 여성을 위한 스카프를 따로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실크 스카프 '까레'(정사각형이란 뜻)다. 그 후 스카프는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소재와 무늬, 길이를 달리하며 독자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으며, 실크 스카프 한 장으로 연출할 수 있는 스타일도 무궁무진하다.
올해 우리 일상과 가장 급속도로 친해진 아이템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스카프로 스카프가 더욱 돋보이는 가을의 문턱에서 요즘 핫한 스카프는 한마디로 ‘입는 스카프’라고 할까? 뚜렷한 명칭을 붙이기 어려운 이유는 형태도, 방식도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둘렀다기보다 입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스카프와 숄, 머플러, 케이프, 판초와 블랭킷의 경계를 요리조리 오가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연출이 유행이다. 머리만 쏙 넣으면 되는 디자인도 케이프처럼 단추나 핀으로 고정하는 스타일도 있다. 톱과 스카프를 반반 섞은 듯한 실루엣도 니트를 입다 만 것 같은 재미있는 셰이프도 있고. 뭐가 되었든 윤곽이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2024 F/W 올겨울 어떤 아우터 보다 빛을 발할 스카프 패션은 그 형태와 스타일이 더욱 다채로워졌다. 스카프를 한 번도 안 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매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매력 넘치는 스카프는 구매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스카프가 처음인 사람은 무늬가 없거나 스트라이프, 페이즐릿 같은 고전적인 무늬를 고른다. 이후 스카프 스타일링에 익숙해지면 점차적으로 과감한 프린트의 스카프에 도전한다.
요즘은 유명 작가의 일러스트를 담은 스카프나 타이포그래프가 그려진 스카프가 유행이다. 컬러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외투나 재킷 컬러와 톤온톤으로 시작해 이후 보색이나 시즌 컬러의 스카프로 포인트를 주면 옷 입는 재미를 배가할 수 있다.
스카프를 고를 때는 예산을 넉넉히 하자. 피부에 직접 닿는 아이템이자 볼륨감을 살리는 것이 포인트이므로 고급 소재를 고르는 것이 좋다. 한 번 사면 오래 두고 사용하는 것이니 목걸이나 반지 같은 액세서리를 고르듯 공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민무늬 스카프를 매 단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생기발랄한 느낌을 내고 싶다면 물방울무늬 스카프를, 활동적인 느낌을 내고 싶다면 체크무늬 스카프를 선택한다. 커다란 꽃무늬나 페이즐리 패턴이 들어간 스카프를 매 화려한 스타일링을 완성해도 좋다.
차분한 인상을 남기고 싶다면 무채색 스카프를 두른다. 파스텔 톤 스카프를 두르면 부드러운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상·하의와 비슷한 색상의 스카프는 안정감을, 대비되는 색상의 스카프는 경쾌감을 자아낸다.
손수건만 한 크기의 프티 스카프를 목에 매면 상큼한 걸리시 룩을 완성할 수 있다.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을 하고 묶은 부위에 스카프로 마무리해 주면 멋스럽다. 롱 스카프를 목에 두르면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길게 늘어뜨릴수록 여성미는 배가된다.
글 사진 제니 안
현) 구찌오구찌-에스페란쟈 수석디자이너 겸 부사장
현) 폴란티노, 바이제니안, 라프시몬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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