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은 카를로 고치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한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이 지난 6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며 막을 내렸다.

이번 작품은 국립오페라단 2025 정기공연으로 독특한 환상과 날카로운 풍자가 어우러진 20세기 명작으로 콘서트 형식이 아닌 오페라 전막으로는 국내 최초로 선보여 오페라 애호가들과 새로운 무대를 찾는 젊은 관객층의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은 왕은 왕자의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해 연회를 열고, 왕자를 웃기기 위해 애쓰던 어릿광대 트루팔디노는 마녀 파타 모르가나와 실랑이를 벌이다 그녀를 내동댕이치는 것을 본 왕자가 웃음을 터트리고 모욕감을 느낀 마녀는 왕자에게 세 개의 오렌지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저주를 건다. 왕자와 어릿광대는 오렌지를 찾아 떠나고 선한 마법사 첼리오는 그들에게 물가에서 오렌지를 깔 것을 충고해 주지만 심한 갈증을 느낀 트루팔디노는 첼리오의 조언을 무시한 채 오렌지를 까게 된다.

첫 번째, 두 번째 오렌지에서 공주들이 나오지만, 이들은 갈증을 호소하다 죽고 만다. 마지막 오렌지에서 나온 니네타 공주만이 물 한 모금에 살아남고 왕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서두르지만 마녀는 결혼을 훼방 놓는다. 하지만 첼리오의 마법 덕분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축복 속에 결혼한다는 줄거리다.

또한, 장군 레앙드르와 왕의 조카인 클라리스 공주가 꾸미는 음모에선 권력 드라마를, 왕자 니네트 공주 사이에선 로맨틱 오페라를, 또 왕자와 트루팔디노의 여정에선 오페라 부파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오페라의 매력을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리듬감과 기발한 멜로디로 풀어내 지루할 틈이 없는 오페라다. 음악에선 뒤뚱거리는 듯한 분위기의 행진곡이 유명하며 특히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사랑하는 곡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 편의 오페라로 만난 관객들은 재밌고 흥미진진한 오페라의 매력에 푹 빠졌다.


지난해 국립오페라단 ‘한여름 밤의 꿈’ 지휘를 맡아 현대 오페라의 매력을 관객들에게 소개해 준 지휘자 펠릭스 크리거가 다시 한번 지휘봉을 잡아 환상의 세계로 관객들을 이끌었다.

펠릭스 크리거는 무대에서 자주 찾을 수 없는 드문 오페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 기대를 모았다.

연출은 만하임 국립극장, 루체른 극장, 베를린 국립극장 등에서 ‘보리스 고두노프’ ‘이도메니오’ 등을 연출한 로렌조 피오로니가 맡았으며, 특히 2020년 선보인 ‘이도메니오’는 “그를 부른다면 경악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 하지만 경악의 순간을 넘기고 나면 피오로니만의 아이디어로 가득 찬 세계가 펼쳐진다”라는 평을 얻기도 했다. 또 그는 2012년, 2013년 독일 최고 권위의 극예술상인 '파우스트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7년에는 ‘그리스 수난’으로 오스트리아 음악극상에서 최우수 오페라작품상, 최우수 연출상을 수상한 바 있다.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의 무대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들려주는 '극장 기계'라는 컨셉으로 디자인됐다. 움직이는 무대장치, 커튼, 자동차 등 연극적인 수단과 동시에 현실적인 요소들이 무대 위에 펼쳐져 환상적이고도 몽환적인 여정을 잘 표현했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무대는 거대한 과일바구니를 연상시키는 무대로 과일과 채소로 초상화를 그렸던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독특한 작품에서 영감받아 과잉과 환상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번 무대에서 친숙한 한국 간판을 등장시킨 파울 졸러 무대 디자이너는 “한국의 거리는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 현대적이고 생생한 에너지를 가진 공간이다. 이런 점이 서로 다른 세계, 문화 간의 교차,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상징할 수 있는 공간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왕자 역엔 테너 김영우, 신현식이 맡았으며, 테너 김영우는 독일 퀼른 오페라극장 솔리스트로, 신현식은 독일 로스톡 시립극장에서 솔리스로 활동하며 독일을 기점으로 K-클래식을 이끌어왔다.

클라리스 공주역엔 도이치 오퍼 베를린 장학생으로 활동을 시작해 현재 국립오페라단과 도이치 오퍼 베를린 교류 성악가로 선정된 메조소프라노 카리스 터커가 맡았으며, 카리스는 풍부하고 파워풀한 보이스가 인상적인 드라마틱 메조소프라노로 한국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국립오페라단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무대디자인

한편, 파타 모르가나 역엔 풍부한 성량과 섬세한 음악성으로 사랑받고 있는 소프라노 박세영과 독보적인 음색으로 국립오페라단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줄리에타 역을 선보여 주목받았던 소프라노 오예은 등 국내외 실력파 성악가들이 이번 오페라 공연에 참여해 관객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