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민MC 송해 씨가 소천했을 때 대한민국이 아쉬워했다. 아마도 96세까지 현역으로 살다간 그의 발자취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수이자 코미디언이었던 그가 KBS ‘전국노래자랑’ MC를 처음으로 맡은 나이가 62세였다. 외아들을 오토바이 사고로 잃고 재기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는 남들이 은퇴할 나이인 62세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34년 동안 진행을 맡았다. 출연자만 1천 명 이상을 만났다고 하는데, 젊은 MC들이 넘어설 수 없었던 내공은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삶의 연륜이 만들어낸 공감 능력 때문 아닌가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급속히 건강이 악화되었지만 그 나이가 되도록 육신과 정신건강 관리를 잘했기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103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100년을 넘게 살아보니 인생의 황금기는 65세 부터였다고 한다. 세계 최대 치킨 프랜차이즈 KFC의 창립자 커넬 샌더스는 인생에서 수 없는 실패를 거듭하다 60세가 넘어 KFC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70세가 넘는 나이에도 발로 뛰며 3,500개 매장을 관리했다. 오너셰프의 자세를 가진 CEO였다.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신음하는 노년
예전에는 60세에 은퇴해 70대에 세상을 떠나도 그렇게 아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30년을 세 번 사는 시대가 되었다. 30년(30세) 준비하고, 30년(60세) 일하고, 30년(90세) 은퇴 이후 삶을 살아가야 하는 ‘트리플 서티즈(Triple-Thirties)’에서 100세 넘게 장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세 번째 30년부터는 건강이 보장되지 않으면 괴로움만 더해지는 나날이 될 뿐이다. 두 번째 30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나머지 30년이 좌우될 수 있다. 병든 부모님을 집에서 부양하는 시대는 한 세대 전에 이미 지났다.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은 치매가 오고 지병이 악화되면 대개 요양병원에 가서 가족과 떨어져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장례식 때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은혜로운 천국환송예배를 드리고 고인을 기리지만, 죽음을 앞둔 마지막 시간은 본인이나 가족 모두 힘든 게 사실이다. 치아가 빠지면 튜브로 유동식을 넘겨야 하고, 누운 채 갈아주는 기저귀에 의존한다. 치매로 인해 병원 침대를 벗어나려 시도하면 어쩔 수 없이 손발이 묶여 보호받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쯤 되면 삶의 의욕이 사라지지만 빨리 죽고 싶어도 의학의 발달로 인해 소원대로 되지 않고 생명 연장이 계속된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추계발표를 보면 65세 이상 비율이 2020년 15.7%에서 2070년 46.4%로 세 배나 증가해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에 이미 노령인구 800만 명을 돌파했고, 곧 20% 이상을 차지하는 시대에 근접해 있다.
우리나라 자살율이 20년 전부터 OECD 국가 중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노인자살율이 높기 때문이다. 노인자살율은 경제적 빈곤과 지병, 외부와의 단절에서 오는 우울증과 밀접한데 우리나라는 OECD 국가의 평균보다 3배 높다. 자살율과 빈곤율은 늘 비례한다. 자식이 부양의무자로 되어 있어 기초수급을 받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자식들은 부양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연을 끊는 경우도 많다.
결국,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리면서 친구 관계도 끊어지고, 정서적 외로움으로 고독사를 맞는다. 노후 파산의 원인은 자녀교육 뒷바라지가 가장 크다. 평균적으로 40대까지 소득의 30%를 지출하고 자녀의 결혼을 위해 은퇴 자금의 55%를 지출한다고 한다. 은퇴 이후 지병은 늘어나는데 자녀 뒷바라지하느라 생활비가 부족해 노후 파산을 앞당기게 된다.
스마트폰 활용능력이 곧 생존능력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경우 외로운 노후 상황이 가중된다. 현대인에게 자녀와 부부관계가 멀어지게 된 요인 중 하나가 인터넷의 발달이다. 한 공간에 있어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시니어들의 스마트폰 활용 능력은 곧 생존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뱅킹을 하고, 검색과 쇼핑, 줌(Zoom) 미팅을 하고, 주식 및 코인 거래, 유튜브와 OTT 플랫폼에서 영상을 즐긴다. 스마트폰을 통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 비즈니스와 각종 커뮤니티가 활발해지는 만큼 가족 간 소통이 멀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가족채팅방을 잘 활용하면 세대 간 소통을 이어갈 수 있다.
얼마 전 우리 공동체 장로님들 부부와 식사를 하면서 근황을 나눈 적이 있다. 한 권사님이 해외에 있는 손주들에게 매일 성경 말씀과 권면을 녹음해 가족 채팅방을 활용해 전달하는데, 신앙교육과 함께 3대가 소통하는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주의 훈계와 교양으로 가르치는 것은 부모보다 조부모가 훨씬 낫다. 대개 맞벌이 하면서 육아에 지친 부부를 대신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성경책을 구수한 옛날 이야기처럼 영상으로 녹화해 보낸다면 어릴 때부터 신앙교육도 되고, 가족 간 관계도 이어질 것이다. 가족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것도 손주들이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효과가 있다. 더 늦기 전에 가족과의 소통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직장에서 퇴직한 고학력자들일 수록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지금까지 유지해 온 사회적 지위를 의식해 제2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집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력을 바탕으로 조금만 테크닉을 배우면 노후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대기업 CEO 경력을 지녔는데 은퇴 이후 호텔 레스토랑 웨이터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사람, 지자체 자연사 박물관에서 해설사로 일하는 전직 아나운서, 퇴임 이후 양봉을 하면서 젊었을 때부터 지속해온 암벽타기를 하는 교장 선생님, 정년 이후 몽골 대학에서 무보수로 학원 선교를 하는 교수님, 일찌감치 병원을 정리하고 선교지로 떠나는 의료인도 있다.
지금은 1인 미디어 시대다. 평생 갈고 닦은 음식 솜씨로 밑반찬 만들기 유튜브를 하거나 경로당 출근을 위한 촌스러운 화장법으로 수십만 구독자가 있는 할머니들도 있다. 기본 여건만 갖춰진다면 자기가 잘하는 것, 하고 싶었던 것, 해야 하는 것들을 도전하는 세대가 시니어들이다.
예전에는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이나 사용하던 줌(Zoom) 미팅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교회 순예배나 사역본부 모임에 등장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헤맸지만 나이든 권사님들도 이제는 온라인 미팅에 익숙해졌다. 해야 하는 거라면 나이 핑계 대지 말고 빨리 배우는 게 낫다.
페이스북의 이름을 ‘메타’로 바꾼 마크 저커버그는 최근 CNBC 인터뷰에서 “2020년대 후반에는 10억 명 정도가 메타버스 상거래를 하며 수백 달러씩 쓸 것”이라고 했다. 2030년 메타버스 시장규모는 6,500조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는데, 대체불가 토큰(NFT)은 이미 가상경제 생태계에 접목돼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메타버스에서 놀고 상거래를 하는 연령대 대부분이 10~20대라고 한다. 자녀와 부모가 한집에 거주하고 있지만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 그 격차가 심해질 것이다. 시니어 연령층에 가까워지는 부모들은 생존과 소통에 필요한 문화습득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시니어들에게 소망을 주는 대표적인 두 인물이 모세와 갈렙이다. 이집트 왕자 모세는 40세 때 살인죄를 저지르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 광야의 양치기로 40년을 살았다. 하나님은 힘과 학식으로 충만했던 그의 젊은 시절 패기를 다 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한 나이 80세에 부르셨다.
유다 지파 족장이었던 갈렙은 40세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으로 파견되어 충성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수 14:7),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 85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헤브론 땅의 장대한 자들 곧 아낙 자손의 산지를 솔선해 정복하고 분깃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나가는 일에 앞장선 신실한 믿음의 용사였다(수 14:13~15).
2022년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새해에 기도하고 다짐했던 비전의 성취를 위해 기죽지 말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시니어들의 발걸음을 기대한다.
김 수 민
방송인 / 칼럼니스트 / 극동방송 25년 근무 / 국제행사 기획 및 MC 전문 / 역서 및 대필 / 스몰토크 외 다수 / 라온위즈 대표 / (사)글로벌코리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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