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일부터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 무대에 오른 음악극 ‘조선협객(차현석 작․연출)’이 5월 10일 성황을 이루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음악극 ‘조선협객’은 일반적인 역사 재현극과는 사뭇 다른 과거 영웅의 삶을 그의 손자가 직접 무대에서 되살려냈다는 것에서 의미가 크다.
그것은 살아 있는 ‘기억의 형식’이었으며, 노래와 연기를 통해 영혼의 무게를 전달하는 장대한 예술적 울림이었으며, 이 작품을 통해 하나의 가족사를 통한 민족사의 깊이를 보았고, 예술이라는 도구로 이어지는 애국의 혼을 체험했다.
조선협객의 중심에는 실존 인물인 차일혁 경무관이 있다. 항일 게릴라로 시작해 6·25 전쟁, 빨치산 토벌, 문화유산 보호까지 관통한 그의 삶은 영웅담으로의 의미를 지녔을 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떻게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윤리적 서사다.
특히, 그는 일본군에 맞선 무장 투쟁은 물론, 적장에게 장례를 치르고 화엄사 문짝만을 불태우는 선택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문명을 지켜낸 인물이었으며, 그의 이야기를 오늘날 무대 위로 불러낸 이는 다름 아닌 그의 손자인 차현석 연출가다.
이 작품은 기존 수 많은 전기극들과 달리 세대를 관통하는 역사적 상상력과 의미가 추가되어 손자는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예술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그 정신을 해석하고,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다시 ‘기억의 공동체’를 세운 그 지점에서 이 연극이 기억의 계승이다.
‘조선협객’이 가장 아름답고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이념을 초월한 예술의 정직한 위치였으며, 이 작품은 좌우의 논리를 떠나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마음’, 그 한 줄기의 감정을 중심축으로 삼아 기생, 무사, 예술가, 독립군 등 주류 역사에서 지워졌던 존재들이 주인공이 되어 누구보다도 뜨겁게 조국을 사랑했던 민중의 얼굴을 복원한다.
이들은 총과 칼보다 노래와 춤으로 시대에 맞섰고, 그 예술은 죽음의 시대에 생명을 외친 저항의 언어였으며, 특히 작품 속 음악은 배경이 아닌 제2의 주인공이었고, 민중의 한을 품은 월북 예술가의 절절한 선율, 그 시대에 살아낸 이들의 노래가 어우러지며 하나의 집단적 울림이 되었다.
차현석 연출은 이러한 음악을 통해 관객이 역사 속 정서를 공유하게 한 이 연극은 아주 독특한 방식을 선택하여 극적 장면에 몰입하다가도 그 흐름을 끊어내어 사건과 인물을 통해 감정적 동화를 유도하기보다는 ‘왜 그들은 저렇게 행동했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이는 관객이 배우들의 노래와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되기보다는 민족의 고통을 껴안고 살아간 인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차현석 연출의 접근은 매우 용기 있는 것이었으며, 그는 관객의 눈물을 유도하기보다는 그 눈물의 근원을 질문하게 만든다.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가와 민족이라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가?”와 같은 본질적 질문이 무대에서 울려 퍼진다.
무엇보다 관객을 깊이 감동시킨 점은 이 작품이 연출자 차현석 개인의 연극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으며, 이 작품은 한 집안의 세대 간 윤리와 정신의 연극적 승화였다. 차일혁 할아버지의 실천은 손자 차현석의 상상력으로 이어졌고, 그 상상은 관객의 가슴에서 다시 타오르게 되는 흐름을 지녔다.
이는 할아버지의 영웅 신화가 가족적 자부심으로 그치지 않고, ‘기억은 전유가 아니라 공동의 책임’이라는 것을 말하는 윤리적 예술의 태도였다. 차현석은 영웅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독점하는 대신, 그것을 모두에게 나누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애국의 마음’이라고 조용히 말하고 있는 듯하다.
‘조선협객’은 “조선을 지킨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것은 총칼을 든 군인만이 아니었다. 목숨 걸고 노래를 부른 예술가, 사람을 살리고자 했던 협객, 역사 속에서 기억을 품고 살아낸 민초들이었다. 이 작품은 그들을 위한 무대였고, 우리가 그 기억을 받아 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역사다.
연극이 끝난 후, 텅 빈 무대 위에서 아직도 노래가 메아리치고 협객들이 넘나드는 장면을 보는 듯 했다. 조선은 당시 사라졌지만, 조선을 지키고자 했던 그 마음은 지금도 우리 안에 깃들어 있었던 것일까. 그 마음을 예술로 다시 불러낸 이 연극은 오늘의 증언이다.
그리고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예술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갈 토대인 국가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북지방경찰청에 있는 경찰영웅 전북경찰 제18전투경찰대대장 차일혁 경무관 동상
출연 : 최용민 김재권 김은현 홍정재 이주화 이란희 문태수 이정원 송경아 이준희 서삼석 민지혁 김연진 외 다수 / 소프라노이고은 / 바리톤이전초 / 제작 : 극단 후암코리아